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소라 히바리 (문단 편집) == 일본 음악계 내의 위상 == 일본 가요계의 [[레전드]]. 음악계를 넘어, 사망 후 국민장급으로 치러질 정도로, 일개 가수가 아닌 일본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위상이 높다. 사후에 [[일본 정부]]로부터 여성 최초로 [[국민영예상]](1989년 7호)을 수상했다. 또한 히바리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부른 <[[川の流れのように]](강물의 흐름처럼)>은 [[일본방송협회|NHK]]에서 조사한 일본의 명곡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. 나중에 우리나라에서도 이건우 작사, 가수 이화숙이 <인생>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다. 여담으로 미소라 히바리 사후, 얼마되지 않아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|일본의 버블경제]]가 [[잃어버린 10년/일본|무너지면서]], 그녀의 위상은 단순히 국민가수를 넘어 일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[[쇼와 시대]] 자체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.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가 일본의 전성기와 묘하게 일치하면서, 그녀를 향한 그리움은 화려했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까지 합쳐진 것. 여러모로 그녀의 타계와 함께 일본이란 나라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. 이와 같은 이유로 미소라 히바리는 타계한 지 [age(1989-06-24)]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, 일본 가요계에서는 전설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[[사카모토 후유미]], [[고바야시 사치코]] 같은 거물급 엔카 가수들은 물론이고, [[김연자]]나 [[계은숙]]도 미소라 히바리의 곡을 자주 부른다. [[미국]]에서 비슷한 위상을 지닌 가수는 [[엘비스 프레슬리]] 정도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